본문 바로가기
십자가 아래에서의 사유(思惟)

악(惡)의 허용에 관하여 - 신정론(神正論)

by 그의 별 2021. 2. 22.

들어가는 말

  몇 주 전쯤, 제가 섬기고 있는 초등학생들에게 아담과 하와가 뱀에게 속아 선악과를 먹게 된 본문을 설교하였습니다. 그렇게 설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1학년 어린이의 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오늘 설교를 듣고 아이가 질문을 했는데, 그 질문에 대해 어떻게 성경적으로 대답해 주어야 할지 조언을 구하시는 전화였습니다. 1학년 어린이가 한 질문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질문을 했을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어야 할텐데...' 마음속으로 긴장하며 아이의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어머니께 여쭤보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어린이가 한 질문에 순간 당황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전부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면, 왜 뱀이 아담과 하와를 속이러 가기 전에 죽이시지 않았나요?' 학부모님께 내색은 안 했지만, 속으로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지금 1학년 어린이가 하나님께서 왜 악을 허용하셨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니!' '그 문제는 악의 허용에 관한 문제란 말이야! 수 세기에 걸쳐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논쟁이 되는 주제라고!' '세상에! 신정론을 어떻게 1학년 어린이에게 설명해 주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당황스러웠지만, 겉으로는 침착하게 신명기 29장 29절에서부터 몇가지 내용들을 어머니께 전달해 드린 것 같습니다.

  전화를 끊고 크게 세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설교를 들은 어린이가 이렇게 질문으로 반응해주니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둘째, 1학년 어린이도 악의 허용에 관하여 궁금해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셋째, 그 질문에 명확히 대답하지 못한 것 같아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일주일간 이 문제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학년 어린이의 귀중한 질문이 시발점되어 간략하게나마 '악의 허용' 즉 '신정론' 이슈에 대해 정리도 해보고 고민을 해보게 된 것입니다. 아래의 글은 그 고민의 흔적들입니다. 조직신학책이나 철학책같이 체계적이거나 전문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최대한 1학년 어린이의 학부모님께 설명해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적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뱀(사단 마귀)을 바로 죽이지 않으셨을까?  (왜 악을 허용하셨을까?)

  이 질문 속에는 사실 크게 두 가지 질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전능하시지 않은가? (전능하시면 사단 마귀를 단번에 무찌르실 수 있으실텐데...)  둘째, 하나님은 선하시지 않은가? (선하시다면 왜 선하지 않은 악을 허용하시는가...) 이렇게 두 가지 질문을 우리에게 생각하게 합니다. 이제 성경을 통하여 첫 번째, 두 번째 질문에 답을 해보려고 합니다.

A1.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20장 10절)

  이 말씀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단 마귀를 심판하시고 불과 유황 못에 던지십니다. 단순히 죽이시는 게 아니라 그동안 잘못했던 것에 대하여 분명하게 공의의 심판을 내리십니다. 이 장면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사단 마귀를 무찌르실 수 있는 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따라서 첫 번째 질문, 하나님은 전능하시지 않은가? 에 대한 질문의 대답이 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사실 요한계시록까지 가지 않더라도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께서는 말씀 한마디만으로도 사단의 졸병인 귀신을 내쫓고 무찌르시는 능력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결론 : 하나님은 능력이 없으셔서, 사단 마귀를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다.)

A2.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선하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왜 악을 허용하실까요? 혹자는 선하시지 않고 나쁜 성품을 갖고 계셔서 인간이 죄를 짓고 괴로워하는 것을 즐기신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악이 허용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항상 선하십니다.

  예를 들어, 애굽의 바로 왕이 끝까지 완악한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지 않는 것을 통하여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애굽에 판 행동을 통하여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위대한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욥기를 보면 오히려 사단에게 욥을 괴롭게 하는 것을 일부 허용까지 하십니다. 그러나 결국 그 사건을 통하여 욥의 신앙이 성숙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이처럼, 그 순간 악하게 보이는 것도(심지어 인간의 죄악으로 인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최선으로 바꾸시어 성도들에게 최선이 되도록 바꾸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됩니다.

결론 :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다.

 

질문을 넘어 찬양으로!

  물론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추론해 본다 하더라도, 질문 - ‘그럼에도 왜 사단 마귀의 유혹을 허용하셨는가?’ 에 대한 직접적인 답은 우리에게 숨겨져 있습니다. (또 추가적으로 생각할 것은 뱀이 유혹을 했더라도, 그 책임은 사람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기로 한 결정은 하와와 아담 자신이 했습니다. 그럼 책임도 하와와 아담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결론 내린 하나님의 두 성품 ‘전능하시고, 선하시다’에 기대어 우리는 숨겨진 그 일에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분명히 있음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신명기 29장 29절)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침묵합니다. 감춥니다. 그러기에 그 일은 하나님께 속한 영역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계시 된 나머지 말씀으로 순종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악의 허용에 대해서는 감추시지만,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그 이전부터 하나님은 예수님을 희생시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시고 예수님은 그 뜻에 순종하셨으며 성령님께서는 그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기로, 이미 창세 전에 삼위 하나님께서 협약을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3~4)

  창세 전에 이미 죄와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계획하시고 우리를 선택하셔서 예정하셨습니다. 신비입니다. 인간의 지성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이 믿어지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계속해서 우리들은 ‘왜 악을 그냥 두셨습니까?’를 질문하지만, 하나님은 그 순간에 이미 구원 행동을 시작하셨다는 사실로 우리에게 대답해 주십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시고 구원 역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며 창세기 1~3장에 있었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지만,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향해 어떤 구원을 계획하셨는지에 대해 듣고 '찬양'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질문이 아닌 찬양으로 하나님께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악의 허용에 관한 대답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백문일답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찬양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11장 36절)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