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십자가 아래에서의 사유(思惟)

'십자가 아래에서의 사유(思惟)' 카테고리

by 그의 별 2021. 2. 22.

  '십자가 아래에서의 사유(惟)' 카테고리를 시작합니다. 이 공간을 통해서 제가 고민하고, 생각한 다양한 주제들을 글로 옮기고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필자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 중이고, 인천의 한 지역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섬기고 있기에 아무래도 주요 주제는 신학, 성경, 설교, 사역, 교회 내 이슈 등이 될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외에도 일상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제가 가끔 들어가 인싸이트를 얻는 한 블로그의 목사님께서 이런 글을 적어 놓으신 것을 보았습니다. '사유(思惟)함이 없는 신학은 말 그대로 사학(死學)이 되어버린다'는 글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그리고 여러 책들을 통해서 일방적으로 주입받는 지식만으로는 참된 신학함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겠지요. 신학도를 포함한 배움의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알게 된 지식들을 체화(體化)하기 위해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유(思惟)'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는 신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리고 교회 현장에서 섬기면 섬길수록 이 필요를 더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사유((思惟)'를 검색하면 이렇게 창이 뜹니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 '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 이 정의에 의하면 '사유'라는 활동은 인간의 이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성'은 하나님께서 피조세계의 피조물 중 오직 인간에게만 주신 고유한 특성이자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이성의 작용을 '사유'라고 하네요. 그렇다면, 인간이 사유할 때에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진정한 인간다움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비약일까요? 사유의 과정은 창조된 피조물 가운데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특권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주신 이성이라는 선물을 가지고 여러가지 주제들에 대해 사유(思惟)해보려고 합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그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십자가를 벗어난 이성은 그 본질과 지향점이 자아 숭배로 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죄의 성향을 그대로 머금고 있는 중생하지 않은 이성 활동은 결국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인간 자신을 신으로 내세울 것입니다. 18세기 계몽주의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인간의 이성 활동이 결국, 성경을 쪼개고 분해해 버리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을 우리는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생각하되, 십자가 아래에서 사유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중생된 이성만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본래의 기능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사유(思惟)하되 철저히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사유해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공간이 그 흔적들을 나누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혹시 지나가시다 저의 그런 흔적들을 보게 되신다면, 댓글로 그 과정에 동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배움의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사유(私有)하고 계신 사유(思惟)가 공유(共有)의 과정으로 확장된다면, 우리들의 사유(思惟)의 과정은 좀 더 풍성해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의 별

댓글